over there

 

움직임은 좋습니다. 그냥 있어도 좋습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음에 그냥 있음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대체로 자극은 에너지 기운의 흐름을 이루어 분출하며 어디론가 흘러 갑니다. 조금, 때로는 많이 어디론가 갑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유가 있을 겁니다. 때로는, 그럴 수는 없기에 그냥 지내기도 합니다.

생명체인 사람도 그렇게 활동합니다. 어떤 자극이 어딘가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것은 괜찮습니다. 누군가는 자극에도 반응하기가 애매하여 그냥 제자리를 지킵니다. 부스스 몸을 떪도, 그렇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가운데 있어본 사람이 잘 알 것입니다. 부모를 통해 물려 받은 모습이 각각 다름에도, 사람에게는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변화를 바라는 마음 그것은 가능합니다. 삶은 그런 것 같습니다.

' movement1 movement2'

 

외곽의 경험을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모습에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꼭 붙어있지 않고 약간 떨어져 있다면 그 모습은 좀 다를 것입니다만, 꼭 붙어 있고 주로 중간에 있어 충격의 전달자의 모습에는 저 밖의 체험을 바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서로간에 타인의 모습을 원해보기도 합니다. 중간의 삶은 바깥을, 바깥의 삶은 중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알기 힘들어 그것에의 궁금 자체가 부재할 수 있습니다.

 

'movement3 movement4'

 

움직여 보는 겁니다. 그렇게 제자리를 벗어나 움직여 보는 겁니다.
물론, 모두가 집을 나가면 어찌되는가에 대해 인류는 경험이 있습니다. 놀며 즐거울 때도 있겠으나, 결국은 고난의 삶으로 귀결되는 모습이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고, 그 마음에 드는 것을 참아야만 한다면, 때로 그 모습은 질병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참아야 좋은 일이, 그 참음으로 일부 좋지 않은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아야 한다면, 그것을 잘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류의 오랜 지혜이며 지식이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생활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합니다. 누군가는 벌고, 누군가는 잃고, 누군가는 항상 비슷한 모습으로 대략 나눌 수 있습니다. 그 모두는 가치가 있으며 존재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경제도 삶도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수 많은 실수하는 인생의 삶에 기반하여 경제가 순환하듯 그런 모습으로 나아갑니다.
‘ 사랑이 식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으며, 사람의 성장이 멈추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겠는지… ’

스마트한 세대, 많은 것을 아는 세대, 때로는 너무 많이 알고 접하며, 과다한 다양성에 노출되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감정, 정서로 인한 후유증, 때로 박자가 맞지 않는 그 표정이 애매한 세대에, 과연 궁금한 것이 있는가, 아니 그 조차 무심하지는 않는지… 그럼에도, 우리는 이 시대에, 때에 맞는 의문과 궁금증이 있습니다.

산 너머 저쪽에 무엇이 있는가 궁금한적이 과연 언제였는가. 내려가는 길이 있지를 넘어, 주변에도 관심이 가는 그런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말할 수 있습니다. 한번 가보라고, 가서 살아보라고… 물론, 따르는 책임과 의무는 당사자의 몫입니다.

모두가 뛰어다니며 생업을 해결해야 하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는 원하는 때에 그냥 돌아다니기만 해도 생업이 해결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글쎄, 얼마나 정확한 지식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숫자를 전부 세지는 않아도, 1 ….. 10,000이라 해도, 드러나지 않는 중간의 숫자를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두를 알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의 의미를 안다는 서로간의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만, 알든 모르든 나름의 소통을 하면 됩니다. 배고픈 자가 배고픔을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과거 저 미 대륙의 엘도라도의 시대 황금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것을 팔아, 그곳에도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곳을 향했던 그런 모습은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세상 삶의 곳곳에 여전한 것 같습니다. 그들 가운데 소수의 사람만이 혜택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음에도 그 존재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그런 많은 실수로 점철된 인생의 존재 모습이 함께하는 가운데 가능함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도로, 철도 등 수 많은 존재에 자신이 기여한 세금이 포함되어 있음과 같이, 어느 날 문득, 안보이던 무언가 들어섰다면, 그간 알게 모르게 잃은 자산 일부가 그곳에 보탠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렇게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은 그 과정에 있다는데 관점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루던 못 이루던 그 과정의 가치를 즐기는 모습이 좋습니다.

어느 때인가 그만 돌아가고 싶고 뉘우침이 들 때, 그 때는 가면 됩니다. 집 나간 자녀가 회개하며 집을 찾을 때 참 부모는 언제나 환영해 주시듯,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죄를 용서해 주시고 참된 삶을 살아가게 해주십니다. 앞을 향해 그렇게 분량에 맞게 나아가는 모습은 좋습니다. 삶은 그런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Ma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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